헤이안 신궁 2.32

Kyoto-shi, Kyo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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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신궁은, 교토 부 교토 시 사쿄 구에 있는 신궁(神宮)이다.역사1895년(메이지 28년) 3월 15일에, 헤이안쿄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교토에서는 내국권업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때 주요 행사장의 하나로 쓰기 위해서 헤이안쿄로 천도할 당시의 다이다이리(大內裏)의 일부 복원이 계획되었는데, 실제 다이다이리가 있던 위치인 센본마루타쵸(千本丸太町)에 스자쿠몬(朱雀門)을 세운다는 당초의 계획은 부지 매입 실패로 수정되어, 당시 교토 교외에 해당하던 오카자키에 실제 크기의 5/8 규모로 복원되었다. 박람회가 끝난 뒤 건물은 그대로, 헤이안쿄로 천도한 당사자인 제50대 간무(桓武) 천황을 모시는 신사로 바뀌었다. 이것이 헤이안 신궁의 시초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근거로 천황가의 창시자 진무(神武) 천황 이래 황기(皇紀) 2600년에 해당하는 1940년(쇼와 15년), 교토(헤이안쿄)에서 재위했던 마지막 천황인 121대 고메이(孝明) 천황이 신궁의 제신으로 더해졌다.1976년 1월 6일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신궁의 본전(本殿)과 내배전(內拜殿) 등 아홉 동(棟)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창건 시기도 당시에는 비교적 최근(메이지 시대)인데다 문화재 지정도 되어있지 않았고, 당시 일본의 소방 관련 법 규정에는 목조건물의 자동 화재알림 설비 설치가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서 대규모 화재로 번졌을 뿐 아니라, 소실에 대한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은 지원되지 않았고 대신 전국으로부터 모금한 성금으로 3년 뒤에 재건된다. 이 화재는 훗날 일본의 신좌익(新左翼) 활동가인 가토 사부로(加藤三郞)의 범행으로 판명되었다. 가토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혀 도탄에 빠지게 한 헤이안쿄를 짓고, 영토확장의 야심 때문에 에미시(蝦夷)를 침략해 수많은 에미시인을 살해하고 노예로 삼은" 간무 천황을 신으로 모신다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고 헤이안 신궁 방화를 결의했다고 한다.내부 구조앞서 밝혔듯 신궁은 헤이안쿄의 다이다이리 안에서도 정청에 해당하는 조당원, 시대상으로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의 제3차 조당원을 5/8 크기로 축소 재현하였다. 크고 선명한 붉은색이 특징적인 정면의 문은 조당원의 응천문을, 안쪽의 좌우의 전각은 조집당을 재현한 것이다. 배전은 조당원의 정전인 대극전을 본떴고 좌우로 창룡루와 백호루를 부속건물로 배치하였는데, 실제 다이다이리에서 대극전과 응천문 사이에 있었던 회창문이나 조당 12당, 응천문 좌우에 부속건물로 세워진 상난루와 서봉루는 신궁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또한 신궁 건물의 기와는 모두 녹유를 얹었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헤이안 시대에는 대극전의 처마 끝과 대들보 부분에만 녹유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